먼저 집안 상황을 조금 설명하면,(장황할듯^^) 우리 집에서는 장남이지만, 우리집에서는 따로 명절을 보내지 않고큰아버지댁으로 가서 명절을 보낸다.
북에서 전쟁통에 내려오신 아버지 형제는 모두 4남 2녀, 그중 아버지가 막내다. 북한에 제일 큰아버지가 계신것으로몇 년전에 알게 되었지만 그 후 소식이 없다. 4남 2녀 중 큰 고모님은 어릴적에 돌아가셨고,그 다음 큰아버지는 작년 봄에 그 다음 고모님은 작년 가을에 돌아가셨다.
사촌 형들이 많은 집안인지라 명절이면 큰아버님들 내외, 사촌형님들 내외와 조카들까지 대략 40여명이 모인다. 한동안 형님들이 조카를 한참 낳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일년에 두세번 보는 조카들의 이름도 헷갈리고 심지어 그 부모들과 짝짓기도 잘 안되곤 했다.
아버지가 결혼을 늦게하신 덕에 바로 위 사촌형과 나이차이가 여섯살정도 나는데 내가 결혼도 조금 늦게 한 편이라 한동안 형수님들께 '도련님'소리 들어가면서 지냈다. 당연히 명절때는 특별히 할일이 없었다. 큰형수님의 솔선수범(정말 힘든 내색 안하시고 열심히 준비하신다)과 지휘아래 형수님들이 챙겨주시는 밥 먹고, 과일 먹고, 어른들 화투치시는 것 구경하면서 티비보는 따분한 명절을 보냈었다.
물론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그런 명절풍경이 맘에 안들고 미안해서, 형수님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한두번 노력했었지만, 형수님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번번히 실패했었다.
이런 나의 명절보내기가 결혼 후달라졌다.
결혼 후 바로있었던 2년 전 추석 명절때 집안의 막내 며느리인아내는 무슨 일을 해야 할 지는 물론이고,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조차 어려워했고 나에게 옆에 항상 붙어 있으라 신신당부를 했었다. 시어머니들, 그러니까 큰엄마들이나 시아버지들이전혀 가부장적이진 않지만그래도 생판 모르던 사람들과 남편의 친척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께 일하고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게 처음부터 편한 사람은 없는게 당연하다.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아직 어린 조카들 보면서 노는게 어울린다.
요리하는거야 큰 형수님이 이미 준비해 두셨으니막내며느리가 할 일이라곤 다른 형수님들을 도와 상차리는것, 설거지 하는 것만거들면 된다. 안절부절 못하는 아내에겐 살살 하라 일러두고 내가 먼저 상차리고, 음식나르고 그랬다. 식사후엔 당연히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했다.
두번째 명절부터는 식사후 설거지는 남자들이 하는게 어떻겠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내바로 위 사촌 형을 붙잡고 설거지를했다.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하고 있는데 설거지 하는 내내 형수님들의 칭찬이 계속된다. 형님과 내가 설거지 하는 동안 형수님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수다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막내 며느리인 아내도 조금씩 형수님들과
아무튼 명절 설거지는 남자가 하는게 어느정도 자리잡았다. 당분간 설거지는 내가 주도적으로 할 생각이지만, 몇년 안에는남자들 중에서 제비뽑기를 하자는 제안을 할 생각이다.
아직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식사 순서!
워낙 사람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식사순서가 항상 큰아버님들, 사촌형들이 식사를 하고, 조카들을 먹이고 그리고 큰어머님들과 형수님들이 식사를 한다. 결혼 후 첫해 명절때 나는 형님들 식사할때 같이 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아내와 같이 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먼저 식사를 하고 아내는 형수님들고 식사를 했다. 내년부터는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면 좋겠다. '이'씨 집안에 시집온 여성분들이 밥해주려고 '이'씨와 결혼한 게 아니니 함께 준비하고 함께 식사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신문기사에 보니까 3월과 10월에 이혼율이 높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가 명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2월 설날과 9월 또는 10월의 추석때 받는 명절 스트레스로 가정 불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로 조금씩 노력하면 소중한 가족들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한걸음씩 가다보면 길이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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